김선미 개인전 ROSE, 그 향기에 대한 사유

김선미
2026 10/21 – 10/26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장미의 옴팔로스

 

                                                   박영택(경기대 교수, 미술평론)

1. 이 그림은 장미꽃으로부터 나온 이미지와 색채로 가득하다. 그림 안에는 구체적인 장미꽃이 등장하고 그것들은 한결같이 한 송이로 극대화되어 다가온다. 꽃은 이제 꽃잎을 활짝 펼치면서 자기 중심부를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부지런히 성장해나가는, 변화를 거듭하는 생명체의 어느 순간을 갑자기 응고시킨 듯하다. 아니 그것은 여전히 진행 중인 과정을 노정하면서 나아간다. 꽃이 피어난 자리가 예민하게 진동하는 그런 느낌이다. 동양에서 그림이란 생명의 지속적인 진행 과정을 따라가는 것이었기에 그것은 선으로 가능했다. 모든 만물은 시간의 흐름 속에 변화한다. 그림의 선은 이른바 그 변화 양태를, 기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동양회화에서 본질적인 문제였다. 순간에서 영원을 느끼는 힘의 가시화가 그것이다.

김선미의 그림은 캔버스에 아크릴릭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평평하고 납작한, 단색조의 색면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 다만 조심스레 이루어진 명암의 대비 속에 장미 꽃잎들의 경계가 구분되고 풍성한 볼륨이 감지되는 편이다. 모노크롬한 화면에 부분적으로 자리한 이질적인 색채의 영역이, 꽃의 중심부가 자리하고 있다. 더러 그 부분에 나비와 같은 곤충이 날개를 펴고 있거나 또 다른 색채를 거느린 꽃이 개입되어 있기도 하다. 개연성 있는 생명체의 기입과 연출이 흥미롭다. 이 꽃의 중심부, 씨방은 생명의 기원에 해당한다. 가운데 깊이 박힌 영역은 옴팔로스(omphalos, 배꼽)로서 모든 가능성을 회임하고 있다. 작가는 이 지점을 강조한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커다란 꽃의 형상과 색채와 함께 꽃의 중심부에 자연스레 시선을 주게 된다. 그것은 시선을 흡입해내는 구멍과도 같다.

 

2. 여러 겹의 장미꽃잎을 강조한 이 그림은 자연을 의인화하거나 자신의 속내를 은밀히 가설하는 차원에서 그려진다. 속을 알 수 없는 타인의 존재를, 혹은 화려한 외양 속에 감춰진 내밀한 상처를, 지인의 매력적인 색채의 옷을 연상해내는 차원에서 장미꽃의 형태와 색채가 결정되는 편이다. 이 색채감각은 패션에 대한 작가의 감수성을 일정 부분 반영한다. 동시에 작가는 장미꽃 자체의 재현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피어나고 벌어지고 변화를 겪는 장미꽃의 생성과정을, 그 약동하는 생명의 기운을 포착하는데도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 그림은, 비록 서양화 재료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상당히 수채화 내지 동양화적인 효과를 창출한다. 물감의 흥건하게 적셔진 수성의 분위기를 농밀하게 풀어내는 한편 대상을 간추려 요약해 내고 있다. 선 보다는 색면, 색채가 주를 이루는 그림이지만 동시에 색채의 그러데이션으로 인해 발생한 경계의 가는 선이 상당히 두드러지게 감지된다. 그 예민한 선의 파동이 이 그림을 생성적으로, 운동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다. 구체적인 꽃의 형태가 부분적으로 인지되지만 추상적인 색면과 평면적인 화면 처리가 우선되고 있다. 화면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배경의 단색은 여러 색채로 등장하는, 농담의 변화를 거느린 입체적인 장미꽃과 대조를 이루면서 단호하게 도포되어있다.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비교적 단순하고 ‘팝적인 분위기’(작가노트)를 자아내려는 연출이다.  

 

3. 실재하는 장미꽃으로부터 발원하는 형상은 원형(圓形)의 형태로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둥근 달이나 커다란 알의 외형을 닮은 장미꽃은 사각형 프레임 안에 온전히 담길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장미꽃의 모서리를 잘라냈다. 그로인해 장미의 피부와 속살을 확대해서 응시하는 시선의 욕망이 감지된다. 육박해 들어가 포착한 장미는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꽃잎의 물성을 촉각적으로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속살이나 내면 혹은 머릿속에 들어가 보는 일과도 같다. 작가는 누군가에 대한 인상을 그렇게 하나씩 장미꽃을 빌어 떠올린다.

부드럽고 매끈한 꽃잎의 질감이 넓은 붓으로 시원스레 칠해나간, 밀어낸 자국 속에 올라와 있다. 재현적인 회화임에도 이 그림에서는 산뜻한 그래픽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디자인과 회화, 재현과 추상들이 서로 얽힌 형국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팝적인 그림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그것이다. 사실 장미꽃은 너무 오래되고 자주 다루는 그래서 클리쉐 이미지가 된 소재다. 그런데 이는 장미꽃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동일한 방법으로, 비슷한 시선으로, 기계적으로 재현해 온 것에 있다. 중요한 것은 장미꽃을 보는 조금은 낯선 시선과 감각에 있다. 그것은 장미꽃에 대한 깊은 응시와 관찰, 그리고 그것을 보고 느낀 자신의 감각에 충실해질 때 가능하기도 하다. 주의 깊게 보지 않으며 사물은 자기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기존의 장미꽃을 그리던 일반적인 관행, 습관을 끊어내고 가능한 자신의 눈과 몸으로 만나고 경험한 장미꽃을 깊게 궁구하면서 조금은 새로운 형상을, 그리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색다른 방법론이 요구된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달리 해보는 것이 무엇을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풍부하고 깊은 회화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조형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과 회화로서의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 장미라는 소재를 재미있게 해석하는 그런 그림말이다. 그런데 새롭고 낯설게 바라보는 것을 현대미술의 여러 스타일을 차용하는 것으로 오해 하는 이들이 무척 많다. 아울러 작가들은 이질적이고 괴이한 상상력으로 연출하는 것이 현대미술을 구현해내는 것처럼 착각하기도 한다. 현대미술이 무조건 새롭고 독창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오해다.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은 기존의 미술 어법과 시선을 문제시하면서 미술의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한편 작가들마다의 시선, 감각으로 해석한 세계와 그에 걸맞는 방법론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도 동일하다. 장미꽃을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새삼 꽃의 형태와 생명체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동시에 일상에서의 경험을 장미꽃과 결합시켜내면서 구상과 추상적인 요소가 뒤섞이고 수채화와 같은 효과를 연상시키는 기법의 활용 등으로 다양한 모색을 펼치고 있는 김선미의 이 그림은 장미꽃을 더 다양하게 해석,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겨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현대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