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혜 개인전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김기혜
2026 10/14 – 10/19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완성된 작품이 각자의 감상 속에서 다시 만들어지기를 바라며

 

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작가 김태호

 

전통적인 재현 회화가 대상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과 비교하면, 김기혜의 시각적 언어는 다분히 은유적이고 상징적이다. 그래서 화면에 재현된 형상들은 마치 덜 그린 듯 흐릿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의 추상에 가까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작가가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억 속에서 점차 희미해져 가는 존재와 사물을 드러내기 위해 선택한 하나의 조형적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로써 김기혜의 작업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물은 특정한 한 사람이나 하나의 대상을 분명하게 지시하기보다 익명의 다수와 보편적인 기억을 향한다.

김기혜는 인간의 삶과 역사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 주제는 그가 그동안의 삶의 여정에서 보고 듣고 알아왔으며, 또 끊임없이 알아내고자 했던 것들의 중심부에 있다. 특히 역사 속 여성들의 삶에 대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조형적 언어로 우리에게 건넨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이런 말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상이 오랫동안 여성을 바라보아 온 편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오래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도 볼 수 있겠지요. 그리고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처럼 많답니다.”라고.

겉으로는 아름답고 장식적으로 보이는 여성의 모습과 그들이 사용했던 소지품, 장신구를 바라보다 보면 그 이면에 자리한 여성들의 희생과 남성 중심 사회가 만들어낸 폭력과 착취의 흔적을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광기의 흔적마저 보이는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써 내려온 고통스러운 시간이 소환된다. 이러한 ‘희생’의 이미지는 김기혜가 지닌 기독교적 신념과도 겹쳐진다. 다만 여기에서 희생은 단순히 숭고한 것으로 미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가 기억하고 성찰해야 할 삶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나는 제니퍼 팩커(Jennifer Packer, 1984–)라는 미국의 흑인 여성 작가를 떠올린다. 팩커는 로마에서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의 〈성 마태오 연작〉을 마주한 경험을 자신이 화가가 된 결정적인 순간으로 회고한 바 있다. 팩커는 카라바조의 그림을 통해 “회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카라바조의 어둡고도 인간적인 종교화에서 팩커가 고통과 인간의 실재를 발견했듯이, 김기혜 역시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여성들과 그들이 사용했던 사물과 도구들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희생이라는 것의 다중적 의미를 새롭게 환기하고 있는 듯하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간 여성들이 사용했던 물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에는 단순한 관찰 이상의 것이 있다. 이는 한때 존재했지만 이제는 사라진 것, 혹은 애초부터 역사 속에서 충분히 보이지 못했던 것들을 들추어내는 시선이다. 그는 여성들의 주변에 존재했던 수많은 물건과 흔적 속에서 우리가 쉽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고, 그것을 화면 위에서 다시 보여준다.

김기혜의 작품에 나타나는 표상들은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지만, 그 모습 전체를 온전히 드러내지는 않는다. 때로는 형상이 서서히 사라지는 듯 보이기도 한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어떤 의미에서 부분적으로 지워진 시각 정보이며, 불확정성과 생략된 서사를 품은 채 추상적인 성격을 띤다. 김기혜는 작품 안에 정답을 써놓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작가 자신도 하나의 정답을 미리 정해놓지 않았을 것이다. 작품을 완성하는 순간부터 그림은 작가의 손을 떠나 감상자의 경험과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건네지는 이미지 속에는, 감상자들이 채워갈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저마다의 경험을 통해 상상력을 보태고,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를 그 안에서 다시 그려내기를 작가는 바라는지도 모른다. (전시 서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