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혜 개인전 빛나며 이지러진 파편들의 긴 덩이
김미혜
2026 05/06 – 05/12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파 편
김 미 혜
산 밑에 살고 싶어 십년 전 불광동에 터를 잡고 꽤 오랜 시간 산을 오갔다. 집 뒷산이 북한산의 족두리봉이다. 산에 의지해 살면서 산이 내게 건네어 준 것들이 많다. 두어가지를 여기에 적는다.
그날도 그렇듯이 산으로 향했다. 새벽녘 집을 나서면 남빛 하늘에 흰 달이 있다. 달빛과 어둠과 함께 걷는다. 동쪽 하늘에 여명이 밝아오면 달은 서서히 이운다. 산 중턱, 선홍색 덩어리가 산의 능선을 적시며 올라온다. 족두리봉에 닿았다. 뒤편으로 돌아 나 혼자 나만의 장소라 부르는 ‘봉곳’에 선다. 빛, 바람, 소리.. 감은 두 눈꺼풀 속으로 장미빛이 파고든다. 뒷 목덜미를 간질인다. 멀리서 바람이 불어온다. 풀잎이 쓸린다. 서걱인다. 잿빛이 되어 고스란히 햇빛을 받아내고 되쏜다. 풀잎 날이 반짝인다. 빛, 바람, 소리.. 내 머리를 사정없이 흔든다. 휘청이는 몸통을 에워싸 할퀴어 댄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
눈을 떴다. 나의 정수리를 관통하며 구리빛 섬광이 내리꽂혔다. 황조롱이와 내가 하나인 순간이었다.
한겨울, 족두리봉 봉우리에 닿기 전 널찍한 바위 둔덕에 한 발을 올리면 “시베리아 벌판이군”소리가 절로 난다. 밤사이 눈이 내렸다. 다른 세상에 와 있었다. 까마귀는 아랑곳없는 듯 감시탑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다. 갈필로 획을 긋듯 힘찬 읊조림. 도끼 같은 부리를 벌려 노래한다. 오히려 내게 들어보라는 것일까.. 펼쳐진 설경 속에서 무슨 말인들 눈 위의 발자국처럼 잠시 흔적으로 머물다 사라질까.
산에 오가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엄마가 한동안 아프셨다. 그 시간을 조금 떠올린다.
엄마가 입원하셨을 때 합병증으로 폐에 물이 고였다. 그 물을 폐에 관을 꽂아 몸 밖으로 빼내야 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엄마의 굴곡진 등 너머의 배액 주머니에 물이 차오르고 있었다. 핏물이었다.
나는 정릉천변을 걷고 있다. 저 먼 반대편에서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정면을 응시한 두 눈은 마치 나를 바라보며 나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 같다. 굽어진 등 뒤로 저녁 노을이 펼쳐지고 있다. 하얀 머리칼과 웃옷의 바바리가 천의 물살 따라 반짝인다. 펄럭인다. 긴 한 팔을 뻗치며 한 다리를 차 올리는 발끝은 허공에 떠 있다. 날아오르는 야생의 새처럼. 천은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고 그녀는 북쪽 방향으로 거슬러 오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