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중 개인전 서걱서걱 갈대 우름소리

김일중
2020 03/11 – 03/16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 미술비평 이수-

밤하늘의 별들은 자유롭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난다. 이 별들은 규칙 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이내 이들의 관계 속에는 어떤 질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카오스는 거대한 코스모스의 일부로 무질서한 별들의 존재는 우연처럼 보이지만 더 큰 필연 속에 있다. 우연의 질서는 인간의 감각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논리이다. 이러한 질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으며 다만 수학적으로만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연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질서를 찾아내려 노력해 왔다. 고대부터 인간은 우주의 질서를 감지해왔으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석했다. 별들 속에서 형상을 찾아내어 그 형상의 의미를 창조하기도 했고, 우주적 질서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수학적으로 논증하기도 했다.

미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르네상스의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기하학적 법칙과 비례에 의거하여 해석했고, 이후 꽤 오랜 기간 화가들은 이를 배워 의심 없이 사용해 왔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자 이러한 수학적 법칙으로 만들어낸 눈속임, 즉 환영은 다시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20세기 미술은 르네상스 이래로 보전해오던 회화의 재현적 특징을 환영이라 비판하면서 회화의 개념과 형식을 재정립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또 한 세기가 지난 현재, 정교한 디지털 매체들은 실제보다 더 그럴듯한 환영을 창조해낸다. 전자적 이미지는 원본을 디지털 코드로 조합된 정보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 보다 더욱 정교하고 선명하게 세계를 재현한다. 현대인은 이미 디지털 이미지에 익숙해져 있으며 이미지가 화소로 환원된다는 이유로 이를 폄하하지 않는다. 이제 디지털 매체는 삶 속에 구조적으로 침투하였으며, 매체가 구성하는 가상의 시공간은 이미 경험적이고 실질적인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전의 한 세기 동안 만들어진 환영에 대한 편견은 디지털이미지가 제공하는 환영과의 관계 속에서 재평가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풍경화 역시 디지털 매체가 환영을 만들어내는 형식을 사용하지만 몰입은 막는다. 작가는 멀리서 봤을 때 보이는 풍경의 게슈탈트(gestalt)가 근경에서는 해체되도록 하였다. 풍경 이미지는 평면적이며 다가갈수록 섬세한 수작업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표면이 매끈하게 정돈되고 기법을 확인할 수 없도록 정교하게 재현될수록 이미지 속에 효과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데, 김일중의 작품에 붙여진 자개조각들은 가까이 갈수록 거친 흔적을 드러내어 이미지 속으로의 몰입을 저지한다. 가까이서 본 자개 조각들의 추상적인 조합이 멀리서는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디지털 이미지의 구조와 속임수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디지털 이미지를 재해석하면서 김일중의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까지는 아무리 정교하게 재현된 가상현실이라고 해도 실제 경험 속에서 일어나는 다채로운 교감을 할 수는 없다. 디지털 이미지의 경험은 우리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되는 개념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완전하게 짜여진 디지털 세계를 온전히 현실로 느낄 수 없는 것은 실제 세계의 우연이나 불확실성이 부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일중 작가의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자개의 규격이나 그것이 붙여진 위치 등은 컴퓨터 이미지만큼 균일하게 규격화 되어있지는 않은데, 이러한 변수들이 오히려 작품의 의미를 풍요롭게 한다. 다시 말해 디지털 이미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인간적 감정과 자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섬세한 감수성이 복원되는 것이다.

다시 밤하늘의 별로 돌아가 본다. 우리는 무질서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이는 별들이 거시적으로는 우리의 감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질서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이러한 우연과 불확실성은 오히려 우리의 삶에 긴장을 주고 자연을 조화롭게 운행하는 우주 차원의 질서의 열쇠가 된다. 그렇다면 디지털 이미지에서 느끼는 차가움은 우연이 만들어내는 긴장과 신비의 부재에서 오는 것일까? 김일중은 차가운 디지털 이미지의 형식 위에 자개조각을 사용하여 다시 실제 세계의 원리들을 하나 둘 씩 복원해내고 있다. 디지털 이미지를 이루는 픽셀에는 어떤 시간도 의미도 없으며 그것의 조합인 이미지 역시 우리가 이미 알아볼 수 있는 것 외에는 어떤 새로운 것을 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자개 조각들은 스스로 색을 만들어 내며 작품을 우연의 시간 속에 던져놓는다. 이처럼 우연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김일중의 작품이 현실 속에서 생명력을 얻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