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개인전 The Giving Tree

김혜영
2026 07/29 – 08/03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The Giving Tree

셸 실버스타인의 동명 동화가 남긴 정서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향해 다시 돌아오는 이의 이야기를 제목과 함께 빌려온다.

전시는 작가의 2000년대 초반 초기작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각기 다른 화면과 색채 속에서도 하나의 정서가 반복해 맴돈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와, 노인이 되어 돌아온 소년. 이번 전시는 작가 자신의 목소리로 되짚는 회고가 아니라, 그 사랑을 가장 가까이서 받았던 딸의 시선으로 작품 세계를 다시 펼쳐 보이는 자리다. 이 그림들은 김혜영 작가의 초기 작업이자,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다시 돌아와 건네는 사적인 고백이다.

김혜영은 1999년 데뷔 개인전 이래 캔버스를 벗어나 금속, 밀랍, 플라스틱, 투명막 등 혼합재료를 다뤄왔다. 금속을 절삭하고 용접하는 과정에서 일그러진 이미지와 흔적 같은 형상을 이끌어냈고, 2000년대 초반에는 철사와 철판, 플라스틱과 한지를 잇대어 평면을 세우거나, 알루미늄과 철 프레임 사이에 스틸 선을 세워 그 간극에 색료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을 전개해왔다.

근작에 이르러서는 스틸 프레임에 균질한 간격의 구멍을 내고 가는 스틸선을 세운 뒤 알루미늄 철사로 엮어, 실루엣의 분위기를 짓거나 평면의 일부를 채우는 고단한 반복 노동을 이어간다. 세워진 선들에는 아크릴로 무지개를 닮은 색을 얹거나 에나멜로 전쟁의 실루엣을 새기고, 선과 선 사이에 길고 짧은 수평 띠를 고정해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는 각을 만든다이 교각은 남과 북의 면적 대비, 분단의 아픔을 가리키는 기호로 놓인다. 배경의 철판에는 분단의 사연을 담은 실루엣이 다시 얹혀, 전경과 후경이 하나의 앙상블로 겹쳐진다.

이번 전시작을 가르는 지점은 작가가 오래 구상해온 딩뱃ding-bat 장식괘의 도입이다. 낱 소리마다 임의의 기호를 배당하는 규칙 — ‘에는 2분음표, ‘에는 사과, ‘에는 둘잇단 16분음표, ‘에는 128분음표을 세워, 이 순서쌍을 이으면나무라는 한 단어가 암호처럼 완성된다.

스틸선의 길이는 자음과 모음 스물여덟 개를 합한 스물여덟 등분으로 나뉘고, 각 음소가 자리한 위치에 채색을 얹어 나무의 이름을 구절로 풀어낸다. 세로로 선 스틸선들 사이에는 가로 방향의 선이 몇 가닥 더 놓이는데, 이는 희생과 사랑이라는 나무의 보편적 의미를 담기 위해 철 프레임을 다시 스물여덟으로 나누어 넣은 것이다.

마지막 무지개는 184개의 스틸선 위에 얹힌 문구다. 가로 130cm를 일곱 등분하여 왼쪽부터 무지개 색을 순서대로 입히면 한 세트의 스틸선이 완성되고, 그 끝에 놓인 낱 소리를 차례로 읽으면 하나의 문장이 드러난다. 작가는 이 방식을 통해 전쟁과 분단이 남긴 상처와 소외, 현대인의 아픔이 초월과 사랑, 배려와 자기희생의 의지로 건너가기를 바랐다고 밝힌 바 있다.

작가의 의도는 결국보는 것읽는 것사이의 경계에 있다. 딩뱃 규칙이 허락한 기호들은 암호로 해독되어야 할 텍스트이면서, 동시에 그 배열과 색, 배경의 실루엣이 함께 짓는 하나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김혜영의 작업은 그렇게, 읽어야 할 것과 보아야 할 것이 만나는 자리에 아낌없이 내어준 사랑의 고백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