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철호 개인전 흘러 지나가는 시간의 조각들

백철호
2019 09/04 – 09/09
3 전시장 (3F)

코닝사 협업작가 Bryan Paik (백철호)의

“흘러 지나가는 시간의 조각들” 전을 준비하며

 

2012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카셀로 가는 고속열차 ICE 밖으로 향한 렌즈를 통해 보랏빛 라벤더 꽃의 색이 카메라 감광판으로 쏟아져 들어 온다. 그때 감광판에 기록하고 간 시간의 조각들은 때로는 촘촘하게 때로는 넓은 여백의 무수한 선으로 그 흔적을 남긴다. 이렇게 나의 첫 추상사진이 탄생하였다 (작품 Passing by lavender fields of Kasel). 비디오가 아닌 스틸 사진의 작품이지만 왼쪽에 보이는 선들은 먼저 지나간 시간의 조각들이고 오른쪽의 선들은 0.01초 후의 (대충 짐작으로) 빛의 흔적들이다. 하나의 작품속에 시간의 흐름을 그 흔적의 궤적 (trajectory of the trace)을 통해서 확인 하고 음미할 수 있다. 차창 밖 풍경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열린 카메라 조리개 속으로 채집한 색과 빛의 흔적들을 모아 “흘러 지나가는 시간의 조각들”전을 준비하였다. 문명의 잔재인 스모그가 전혀 없는 아득히 먼 홋카이도의 숲 속에서, 장노출로 열려진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 채집된 원시의 녹색들이 있는 그대로 첨단 테크놀로지를 통하여 코닝사의 얇은 유리판에 각인된다. 그 빛의 흔적들은 형체를 흐트러뜨린 미니멀리즘적인 추상의 형태로 재구성되고 표현되었기에 선입견없이 우리의 망막 안으로 고스란히 흘러 넘어온다. 한가지 개인적인 바램은 추상회화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지만 나의 작업의 장르는 여전히 현대회화의 영역에 머물고 싶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1998년 발표한 나의 첫 컴퓨터그래픽 작품인 Digital Madonna도 함께 발표한다. 이 작품의 독창성은 한 pixel의 이미지와 전체 이미지가 같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은 2001년 4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제 7회 서울판화제에 출품되었고 그 해 월간미술 4월호에 서울판화제를 소개하는 기사의 대표 이미지로 소개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그동안 여러 번 Diasec 기법으로 출품해 왔으나 이번에 코닝사의 ‘Gorilla Glass’에 얹어서 다시 한번 출품한다. 훨씬 얇아지고 가벼워진 디스플레이 기술은 현대 주거환경의 세련된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미술품으로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 같다. 모든 작품들은 대형 건물의 로비에 꽉 차는 10m X 10m 혹은 10m X 6m 의 거대한 크기로도 제작할 수 있다.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코닝사의 art wall 사업의 협업작가로서 단조로운 현대 건축물의 어느 한 면을 열대림의 색과 빛으로 (작품 Tropical Forest) 혹은 여명의 빛으로 (작품 Daybreak) 채우고 싶은 열정에 휩싸인다.

 

2019년 9월 Bryan Paik (백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