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열 개인전 법고창색

유상열
2025 05/14 – 05/19
2 전시장 (2F)

 행복한 여정

아마 그때도 비개인 파란 하늘이 나를 설레게 했던 것 같다.

“쪽”빛 하늘…

오늘도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꽃분홍 사이로 파란 하늘을 보며, 54년 전 소설 속에서 만났던 비현실적인 “쪽”빛 하늘과 “꼭두서니”빛 노을을 생각하면 지금도 설렘이 너무 생생하다. 어렸을 때 형님의 책을 몰래보다 만난 말들이다.

그러나 내가 색깔에 관심을 보인 건 시간이 꽤 지나서이다.

그때는 아마 들어보지 못했던 단어의 어감이 특별했고, 그것이 색을 형용하는 말들이라는 것에 마음이 끌렸던 것 같다. 매일 보는 하늘, 그 하늘에 매일 조금씩 다르지만 석양이 만들어내는 흙 돌담너머의 노을은 언제나 쪽빛과 꼭두서니빛을 머리 한켠에서 가슴의 두근거림으로 담아내게 하며, 늘 화두처럼 머리에서 떠나질 않고 나에겐 풀어야할 숙제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천연염색이 3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너무 어렵기만하다. 이제 내손으로 쪽 농사지으며, 맑은 하늘을 닮은 쪽빛도 확인했고, 검푸른 쪽빛 바다색도 만들어봤고, 늦가을 서리 맞아 폭삭 주저앉은 꼭두서니 뿌리를 채취해서 내가 보았던 아름다운 노을빛도 빚어 보았지만 천연염색을 하다 보니 그게 쉽고 만만하질 않다. 해야 할 것도 많고, 궁금한 건 더 많아 졌다.

그래서 저간의 내 삶은 더 소란스럽기만 하다.

지관止觀(멈추어 서서 있는 그대로 바라봄)…. 내 삶에 선명한 것이 없다.

그런 연유로 부족하지만 몇 해 전부터 그간의 작업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모아두었던 색들을 내 보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스스로 쏟아내는 질문에 두렵기도 하다. 내가 빚은 색을 보는 많은 분들이 납득할 수 있을지,

아니면 그들을 설득하고 영감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일 것이다.

우리의 색채 개념은 관념적이다.

천연염색은 내가 꿈꾸는 각각의 이디엄idiom이지만, 작업을 하다보면 가끔 누군가에게 동의를 구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마 공허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한다. 이 전시는 그동안 해온 작업의 궤적과 삶의 무게와, 그리고 짧지 않은 시간을 공들인 나만의 서사와 그 가치를 위한 보편적 기록이다.

끝으로 제가 여기 까지 올 수 있게 가르침과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오늘에서야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40년 지기 도은, 서진 할머니 실인室人 김옥란에게 바친다.                    

-2025 봄에 藍茜齋에서 유상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