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경 개인전 結; 피어나다

이유경
2020 04/15 – 04/20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이유경

2020.04.15()~2020.04.20(월)

꽃의 시간에 피어난 자아

마음 결에 색을 입힌다

 

모란꽃을 그린다.

한지 위에 겹겹이 올린 채색 위에 선과 색면의 꽃의 형상들, 그리고 규칙적인 작은 점들…

스치는 생각과 감정들은 끊임없는 순환을 만들고

꽃 결을 따라 전해지는 생각, 감정, 기분들은 시적인 긴장감과 함축이 내재한다. 다양한 감성은 화면 속에 기쁨, 슬픔, 행복, 외로움, 사랑, 그리움, 이별의 정서를 담는다.

재현적인 양식을 따르면서도 주관적인 해석을 덧붙임으로써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에 색을 입힌다.

그리고 색과 색의 겹침 속에 감성이 중첩되어진다.

점과 선에 의한 추상적인 이미지는 비현실적인 느낌을 살리고,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이해와 함께 그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는데 유효하게 쓰였다.

그것은 어쩌면 작가가 승화시킨 풍부한 경험에서 포착한 섬세한 감성들의 이야기일수도 있다.

색의 조화와 사유의 표정들이 가득한 회화이다.


이 유 경 작가노트

마음결 향기를 따라

꽃에서 나를 본다.

한지 위에 겹겹이 채색을 쌓아 올리고

꽃의 형상을 그린 위에 규칙적인 작은 점들을 올려준다.

꽃 결을 따라 생각, 감정, 기분을 전하며

거기에는 시적인 긴장감과 함축이 내재한다.

스치는 생각과 감정들은 끊임없는 순환을 만든다.

매 순간의 감정은 달라도 정성껏 쌓아 올리다 보면

색깔이 어둡던 밝던, 그 나름의 색으로 발현된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한 겹씩 성실하게 향기를 입히며 가는길

나의 삶에 스며든 결은 선한 삶을 소망한다.

다양한 감성은 화면 속에

기쁨, 슬픔, 행복, 외로움, 사랑, 그리움, 이별과 같은 정서를 담는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마음에 색을 입힌다.

색과 점이 겹치며 감성이 중첩된다.

그것은 어쩌면 내안에서 승화시킨 풍부한 경험으로

매 순간 달라지는 섬세한 감성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느덧 나는 색의 조화와 사유의 표정들로 가득하게

피어난다.


혼연(渾然)한 성정(性情)의 화심(畵心)

/ 황 의 필 (Hwang, Eui-Pil, 미술평론가)

자연의 순환에는 항상성이 끊임없이 회전하기 마련이다. 영속성으로서 부단히 무한 반복을 이루는 자연의 오묘한 질서에는 쉼없이 흐르는 생태의 어우러짐이 생동하고 있다. 그러니 생동에는 시간성으로 점철된 자유를 영구히 받아들이는 섭리가 깔린다. 이로 말미암아 ‘대자연’은 상호 관계로서 융섭을 이루니 마땅히 물질계와 정신계를 일컫는 ‘오온(五蘊, pañca-skandha)’의 섭리와도 유사하다. 그런 이유로 ‘오온’은 ‘대자연’으로서 청정(淸淨)하므로 무염(無染)이 흐른다.

이러한 자연관은 주자학(朱子學)의 창시자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불교(佛敎, Buddhism)나 도교(道敎, Taoism) 철학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탄생한 ‘이기철학(理氣哲學)’의 핵심과 흡사하다. 말하자면 형이하학(形而下學, concrete science, physics science)에는 ‘기(氣)’를,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s)에는 ‘이(理, the principle)’의 관계를 각각 부여한 국면과 닮아 있다. 물론 이러한 ‘이’와 ‘기’의 원리에는 시간의 선·후를 전제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기철학’은 ‘동정(動靜)’의 원리로서 상호 관계를 맞는다.

이처럼 자연의 이법(理法)에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운치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는 실체(實體)를 두지 않기 때문에 마땅히 나눌만한 대상이 비존재하니 차별(差別)됨도 무의미하다. 그러므로 ‘연기’의 현상으로서 무한하다. 이는 ‘일체법(一切法)’의 순리이며 무상(無相), 무아(無我)의 깨달음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 맥락에서 자유의 시간성에 귀기울이려는 이유경은 대자연의 순행 이치를 그만의 세계에 고히 담아내려는 태도를 엿보인다. 그는 이에 걸맞게 용색(用色)의 색점을 무한정으로 흩날리기도하고, 때론 용묵(用墨)의 혼침(混侵)으로 돋아나게 거듭 반복을 지향하기도 한다.

자연의 이법에는 ‘성정(性情)’의 맥이 부단히 소리없이 흐른다. ‘성정’의 이치는 ‘오온’의 섭리처럼 그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국면을 자아낸다. 그런 만큼 ‘성정’의 순리는 ‘이’와 ‘기’의 관계를 상호 동·정(動·靜)으로서 이끈다. 무한히 흩어지고 모이기를 쉼없이 펼치는 씨앗과도 같이 ‘성정’에는 ‘무상무념’의 섭리를 품는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아서 주·객이 분파에서 멀어지며 또한 분파에서 멀어지니 마땅히 일체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섭리에는 발출과 본체의 융합 현상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유경은 모란의 생태 현상을 자신의 예술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일명 모란꽃의 생동 작용이라고 전제해도 무방하다. 이렇듯 모란꽃의 생태 현상으로 다가서려는 그의 ‘성정’에로의 관심에는 ‘이’와 ‘기’의 실현, 즉 ‘이기론(理氣論, Theory of the Basic Principles (Yi) and the Atmospheric Force of Nature (Gi) / Theory the Predisposition of Nature)’의 움직임을 모색하려는 태도가 엿보인다.

자고로 ‘성(性)’이 발현하면 ‘정(情)’을 이루며 ‘정’이 발현하면 ‘기(氣)를’ 이룬다. 이른바 ‘성’의 발현에는 ‘칠정(七情)’, 즉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을 담아낸다. 여기에서는 마음(心)의 문제를 마땅히 읽어낼 수 있다. 마음은 곧 ‘이’와 ‘기’가 서로 합을 이루는 이치이다. 이유경은 이러한 ‘이기’의 융합을 모란꽃에서 유유자적하게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가 모란꽃의 의미를 두고 “꽃의 시간에 맞닥뜨린 자아로서 마음결에 색을 입힌다”는 말로 대변하듯이 혼연의 ‘성정’을 마음으로 품으려고 시도한다. 이를테면 순백색의 종이와 색빛의 어울림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무수한 색점들의 부유하는 자태는 어디론가 홀연히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곧 이어지고 또 이어지기를 순환으로서 맞이하는 양상과 닮은 형국이다.

이에 따라 그는 “스치는 생각과 감정들은 끊임없는 순환을 만들고 꽃결을 따라 생각, 감정, 기분을 전하며 거기에는 시적인 긴장감과 함축이 내재한다”고 말하면서 “다양한 감성은 화면 속에 기쁨, 슬픔, 행복, 외로움, 사랑, 그리움, 이별과 같은 정서를 담는다”고 강조한다.

가령 이러한 정황은 ‘이기(理氣)’의 논리와 관련 지어도 무방하다. 즉, ‘이’는 ‘형이상(形而上)’이어서 ‘도(道)’와 같은 본성(性)의 이치를 담으며, ‘기’는 ‘형이하(形而下)’이어서 만물의 형태(形)를 따른다. 이른바 ‘성정(性情)’에서의 ‘성’과 ‘정’의 기질은 각각 분별을 마다한다. 주희(朱熹, 1130~1200) 역시 ‘성정’에 심취하는데 ‘성’에는 형(形)이, 형에는 심(心)을 낳는다. 곧 심의 물(物)로부터 감(感)을 낳으니 욕(慾)을 양산하기 마련이다. 결국 ‘성’의 욕은 곧 ‘정’인 셈이다.

무릇 ‘심’은 ‘기’와 결부되기 때문에 ‘이기’를 합(合)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성정’의 융통과도 같은 섭리이다. 이는 모여듦과 흩어짐의 집산(集散)으로 나타나는데, 이른바 색점으로 포치(布置)되는 국면과 상응한다. 그러니 무한히 뻗어나가면서도 그치기를 반복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발산에는 그 발산됨의 시간이 흐르기 마련이다. 그런 차원에서 시간 발생의 인식은 사건의 경과를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사실 연속으로 시간이 흐른다는 인지에는 자아의 개입이 따르며, 따라서 아직(未) 동(動)하지 않은 경우와 이미(己) 동(動)한 경우를 ‘성정’으로 인식한 결과가 개입된다.

그런 연유에서 던지는 말이지만 가령 주희의 경우에는 “발하기 이전”을 성(性)으로, 그리고 “이미 발한 경우”를 정(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性是未動, 情是己動, 心包得己動未動. 蓋心之未動則爲性, 己動則爲情. 所謂心統性情也.” 卷五 ?董銖錄?) 물론 ‘성정’의 이법에는 마땅히 마음이 자리한다. 이처럼 마음은 발하기 이전의 ‘성’과 이미 발한 경우의 ‘정’이 끊임없이 연장선상으로 이어지면서 ‘성’이 발하는 순간의 정신을 담아낸다.

필경 ‘성’과 ‘정’은 회통(會統)의 마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즉, 부동(不動)의 ‘성’을 두고 체(體)라고 일컬으며, 마침내 감통(感通)하면 ‘정’의 용(用)에 이른다. 이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성학십도(聖學十圖)?에서도 밝히듯이 ‘적연부동(寂然不動)’의 ‘성(性)’이나 ‘감이수통(感而遂通)’의 ‘정(情)’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곧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마음으로 대변할 수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애(愛)·공(恭)·의(宜)·별(別)이라는 ‘정’을 낳는다.

결국 이유경이 말하듯이 “색의 조화와 사유의 표정들로 가득한 세계”에는 ‘성정’의 마음을 잠재된 회통(會通, mutual understanding of knowledge)의 형국으로 이끌어내려는 집념이 엿보인다.


목단을 주제로 한 화해적 심상표현

이유경

 

동양의 전통 회화에서는 대상의 외형뿐 아니라, 화가의 내면 심리 및 정신과 인격을 반영하여 예술미의 가치를 평가해 왔다. 더불어 선(善)이 내재 된 본연의 마음이 작업에서 구현되는 것을 미(美)의 내적 조건으로 여겼다.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목단을 주소재로 작업하면서 목단의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형상을 통해 내면의 심리와 감성을 투영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따라서 목단은 주관적 심리와 감성이 담긴 시각적 이미지라는 맥락에서 심상(心象) 표현, 즉 의상(意象)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목단은 크고 화려한 형태가 주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길상적(吉祥的) 의미를 부여하게 되면서 회화의 소재로 활용되었다. 본 작가 또한 초기 작업에서는 목단의 의미와 형태에 관심을 두었다. 하지만 목단을 주제로 한 작업 과정은 또 다른 의미 부여의 계기가 되었다. 즉, 목단의 외형에서 관찰되는 아름다움과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부귀의 상징적 가치보다는 작업행위에서 개입되는 자신의 심리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에서 나타나는 함축된 표현 방식을 미(美)와 심리 투영의 요소로 검토 한 것이다.

유가의 욕망관은 도덕적 실천행위를 통해 욕망을 절제하고 인격미를 내포한 예술작품을 지향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작가가 작업을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창작 태도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목단에 투영된 자아의 의미와 심리변화를 검토하고, 수양적 성격의 작업행위와 화해적 표현형식 및 기법적 특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목단’을 소재로 한 작품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작가의 감성과 자아를 상징적으로 투영하였고, 작업과정에는 절제와 수양의 심리가 내재된 것으로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마음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본성과 외적인 대상을 통해 칠정(七情), 즉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등의 의미가 표현된다는 것을 유가 미학의 성정론을 통해 확인 되었다. 형신(形神)에 의한 절제미 구현의 논의에서 형(形)은 예술작품의 형상으로, 신(神)은 내용, 의미, 감정 등이 예술형상에 드러남을 강조한다. 형태를 닮게 그리는 것을 넘어 천지자연의 내재한 정신의 발현에 가치를 둔 것이다. 본 작가의 작업에는 절제미의 내재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목단은 외형적인 대상보다는 자아와 내면과의 ‘신(神)’을 담고자 하였으며, 욕망을 조절하고 절제하는 도구라는 것이다.

더불어 예술창작에서 ‘정(情)’은 창작자가 외부의 대상과 접촉하여 내적으로 발생하는 예술 정감이다. ‘경(景)’은 경치, 풍경, 경관으로 창작자의 ‘정(情)’을 일으키는 자연 경물의 객관적 모습 또는 ‘정(情)’과 교융(交融)하여 경물에 의한 감흥으로부터 형성된 예술형상인 것이다. 작업 소재인 목단은 예술작품에 반영되는 장면의 ‘경(景)’이며, 작가의 인상과 체험은 ‘정(情)’이 되고 ‘정(情)’은 ‘경(景)’을 결합한 상(象)으로 발현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감이 드러나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업에서는 목단과 작가의 심상이 투영되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작업은 형상과 심상을 조화롭고 드러내어 화해미를 발현하는 결과로 도출되었다. 이와 같은 과정은 자아의 은유 및 심상 표현에 대한 이해를 높여 작품창작과 작품분석에서 작가의 심리가 검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