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영 개인전 유영하는 공간

이은영
2019 06/12 – 06/17
2 전시장 (2F)

유영하는 공간

 

어린 시절, 나는 욕조에서 유영하며 자유로움을 즐겼다.

욕조에 반쯤 잠겨 바라보던 풍경은, 저물어가는 햇빛으로 인해 물 표면이 부서지며 반짝이고 있었다. 몸짓에 맞춰 흔들리는 물소리, 그 안에서 느껴지는 내 심장소리는 오롯한 나만의 공간을 선물해 주었다. 이렇게 포근했던 물에 대한 기억은 유영에 대한 상상의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기억은 자라면서 비교와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마다 그 시절 유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자존감을 되찾게 일으켜주었다.

 

동양의 사유에서 물은 만물의 시원이며, 미적 대상인 동시에 창조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실경보다는 초월적인 정신세계의 구현을 중시하였으며 사실과 관념의 합일적 조화를 이룬 이상향적인 시ㆍ공간을 표현하기에 적합하였다. 따라서 물은 나의 작품 속에서 물질적인 상상력으로 작동하여 세계를 다양하게 변형시키고 내면과 세계를 품는 양상을 일깨워준다. 물의 변화와 다양한 속성들로, 지친 현실을 따듯했던 추억을 기반으로 한 평온한 풍경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드(Freud)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경험을 추구한다.”고 하였다. 이를 볼 때, 나에게 즐거움과 편안을 주는 것은 물이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바로 어린 시절 욕조에서의 시공간, 따뜻했던 추억속의 평온한 풍경으로 치환된 그리운 장소인 것이다. 이렇듯 나의 작품에 구현된 공간은 이상 공간도 아니고 현실의 공간도 아닌 경계를 의미한다. 우리들의 추억은 공간에 의해, 공간 가운데 존재한다. 이는 같은 곳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이를 결정하는 요소 중 하나는 아마도 경험일 것이다. 예를 들면 소독차가 뿜어내는 연기가, 지독한 냄새로 느껴지는 것과 달리 일부는 소독차를 따라다니며 놀았던 추억으로 인해 그리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볼 때 공간의 가치는 단순하고 무의식 속에 뿌리박고 있어서, 상세한 묘사보다는 단순한 환기에 의해서 되찾아지곤 한다. 이러한 상상을 기반으로 물이 가득 찬 공간에서 유영하는 펭귄의 모습에 현실의 나를 투영하였다. 물속에서 펭귄의 날개 짓은 뒤뚱거리며 걷는 땅보다 편하고 자유롭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각박한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나는 그리운 유영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현실을 중화시키는 방법으로 세상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상상에서만 존재하던 공간을 화면으로 끄집어내는 과정을 통해 해소를 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