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욱 개인전 LIMEN : INTERSPACE

이희욱
2019 02/20 – 02/25
2 전시장 (2F)

전복되는 양면_경계와 기준

김미교(독립기획자)

사회의 구조와 그 상징체계들의 해석에 관심을 둔 이희욱 작가는 이번 <limen>시리즈에서 드로잉과 설치작업을 통해 새로운 알레고리적 실험을 한다. 사회비판적 내용을 담았던 걸개그림, 포스터 작업에서 단편적인 배경과 인물, 이미지들이 구성하는 종교화 도상의 구성을 실험한 <구원의 이미지> 시리즈를 거쳐, 새롭게 진행하는 <limen>시리즈는 이희욱이 가진 관심과 작가로서의 습성이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구체적인 분석에 앞서 작가의 알레고리에 대해 살펴보려한다.
오늘날 언어는 순수하게 시각적인 현상으로 취급되는 반면, 시각적 이미지들은 해독되어야 할 문서로서 제공된다. 이희욱의 작품에는 읽어야할 이미지(알레고리)들이 펼쳐져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시각예술의 전통적인 것부터 동시대적 징후까지 다양한 알레고리가 등장한다. 이희욱에게 알레고리는 예술의 기법이자 태도이며, 과정이자 지각작용이다. 작품이 공격받을 때마다, 메타텍스트적인 측면이 상기된다. 그의 작품에서 하나의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여 해독되며, 크레이그 오웬스의 표현처럼 알레고리적 작품에 작용되는 패러다임은 마치 고쳐 쓴 양피지 사본과 같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과정에서 양피지에는 가장 최근에 적힌 텍스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겠지만, 이전에 작성한 텍스트들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수많은 레이어가 되어 함께 읽힌다. 이러한 상황은 이희욱이 그림의 소재를 선택하고, 이어 관객들이 그것을 관람하는 과정에서 반복된다.

중첩되는 구조
이희욱은 도상들을 끊임없이 구성하고 조합한다. 이질적이지만 나름의 카테고리를 엮어내는 드로잉 실험은 정확한 지표와 유사한 지표를 엮어 새로운 읽기를 제안한다. 이전 <구원의 이미지> 시리즈에서는 회화 안의 종교적 알레고리들이 엮여있는 ‘사물’과 일상의 알레고리를 대변하는 ‘주변인’의 이미지를 조합했다. 이번 <limen을 위한 드로잉>에서의 시각적 실험은 이전에 차용한 기독교의 도상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원시적, 종교적 이미지와 해양생물들, 그리고 동시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번 시리즈는 이전의 유화작업을 비롯해 수채화와 팬 드로잉을 중심으로 사실과 이미지, 공간과 공간의 중첩하고 유사한 이미지들의 융합을 시도한다. 이에 관객들의 눈동자는 프레임과 프레임,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를 바쁘게 움직인다. 이러한 시선의 동선은 시간과 공간 안에서 벌어진다. 알레고리가 수많은 과거의 레이어들을 함께 드러낸다면, 트레이싱지와 드로잉의 물리적 레이어들은 시공간적인 범주의 중첩된 해석을 유도한다. 관념적 이미지의 중첩을 넘어 시도한 물리적인 이미지의 중첩은 앞으로 그가 다루게 될 매체와 작업에 새로운 문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limen_관계의 기준
이번에 이희욱 작가가 키워드로 잡은 ‘limen’은 영어에서 문지방이자 의식의 한계, 안팎의 한계, 한정, 구별의 의미를 지닌다. 스페인어에서는 흥미롭게 ‘문지방’을 의미하는 동시에 ‘지식의 첫걸음’을 은유한다. 대상을 보여주는 지표는 분류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이희욱의 지표들은 그것의 대상을 인지하게 하는 경계를 마치 문지방 넘듯 넘나들며 해석하게 한다. 그가 가져온 전설 속 동물들과 오브제, 도상들은 기존의 상징체계를 해체하고 우리로 하여금 각각의 이미지들은 서로 영향을 주며 다양한 해석을 끌어낸다. 머리가 둘 달린 뱀처럼 기민하고, 엉뚱하게 구성된 이미지들의 접합은 구체적인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담을 빈 그릇이 된다. 분류의 기준이었던 ‘limen’은 둘 이상의 분류 사이에서 직접 맞닿는 접합면이자 관계의 기준이 된다.

개개인의 limen
이희욱은 이전 <구원의 이미지> 시리즈에서 종교화 속 성인(聖人)을 동시대 주변인으로 대체하며, 제목과 동세 그리고 오브제들을 통해 개인을 성인(聖人)으로 변신시켰다. 이처럼 이희욱은 구체적인 개인들을 그리고, 관람객으로 하여금 이미지에 개개인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다. 일반적인 초상화속의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인물들이 아닌 개개인의 이미지는 또 다른 개개인인 관객으로 하여금 수많은 해석을 가져온다. 많은 알레고리적 이미지들이 들어갈수록 그것을 구분 짓는 개별적 ‘limen’들은 같은 공간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수많은 관계들에 대한 각각의 기준을 이룬다. 즉 관객 개개인의 인식체계에 따라 다층적인 의미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번 <limen> 시리즈는 작가가 즐겨 사용하던 알레고리의 특성을 관객의 해석이라는 범위까지 확장하는 직접적인 실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