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선 개인전 KOI

전미선
2019 04/24 – 04/29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나이프로 부활한 코이아트

 

전미선 작가는 잉어를 소재로 한 (KOI) 시리즈로 싱가포르,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받아 왔다. 하지만, 잉어 그림은 이미 오늘날의 컬렉터들에게 주요 관심 대상은 아니며,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에서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오랜 전통 때문에 이제는 평범하기까지 한 소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미선 작가의 (KOI) 시리즈는 그 첫 발표 무대인 싱가포르에서 컬렉터들에게 강렬하게 어필하더니, 이어진 홍콩 등 여러 나라에서도 역시 많은 컬렉터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잉어 그림을 그렸다는 사실만으로 컬렉터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시대가 아님에도 전미선 작가의 (KOI) 시리즈가 이처럼 많은 컬렉터의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한.중.일 동양 3국의 잉어 그림의 전통을 살펴보자. 잉어는 일찍부터 동양 3국에서 즐겨 다뤄온 전통적인 소재였다. 그 기원은 중국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양식은 이후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수많은 전설 속에서 잉어는 행복과 재물을 가져 다 주는 용의 화신으로 다루어졌는데, 긴 수염과 비늘의 모습에서 용의 모습을 연상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잉어 그림은 폭포수를 향해 돌진하여 용이 되는 장면이다. 폭포수를 역류하고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소수의 잉어들은 용으로 승천한다고 사람들은 믿었고, 그래서 중국인들은 어려운 대학입시의 관문을 통과한 학생이나 커다란 난관을 뚫고 자신의 의지를 실현한 사람들에게 ‘잉어가 용의 관문을 통과하였다(鲤鱼跳龙门)’고 말하기도 한다. 일본의 경우 소위 ‘코이아트(KOI art)’라 불리는 장르가 존재하는데, 사실상 일본의 전형적인 판화 양식인 ‘우키요에’를 통해 잉어 그림을 세계적으로 전파했다. 우키요에가 유럽에서 인기를 얻게 되자 잉어 역시 인기 있는 소재로 부상하게 되었고, 카츠시카 호쿠사이와 같은 우키요에의 거장들 역시 잉어의 형상을 줄곧 우키요에로 작업해왔다. 한국에서도 잉어 그림은 ‘어해도(魚蟹圖)’라 해서 메기. 붕어. 새우. 가자미 등과 함께 인기 있는 소재들 중 하나였으며, 서로 화합하고자 하는 궁합 사상 등의 의미로 잉어 등을 많이 그려왔다. 특히 19세기의 장한종은 잉어 그림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였으며, 이 외에도, 김인관. 심사정 등이 잉어 그림을 즐겨 그렸었다.

 

이처럼 유서 깊은 잉어 그림의 전통을 바탕으로 전미선 작가는 전통적인 잉크와 화선지 대신에 유화물감과 나이프를 갖고 캔버스 위에 전혀 새롭게 해석을 하고 있다. 혹자는 전미선 작가의 (KOI) 시리즈가 단순히 전통적 잉어 그림들을 먹과 붓 대신에 유화로 옮긴 것이라 단순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전미선의 (KOI) 시리즈에는 작가만의 해석이 다양하게 담겨 있으며, 바로 이 지점이 관람객들은 물론 세계 여러 컬렉터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잉어들이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전형적인 모습은 전미선의 (KOI) 시리즈에도 어김없이 등장하지만, 전통적인 알레고리나 상징들은 새롭고 현대적이며, 유럽 특히 로저 프라이(Roger Fry)나 클라이브 벨(Clive Bell) 등으로 대표되는 형식주의적 미학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새로운 작품들을 보고 그의 전통적인 상징성보다는 잉어를 주제로 화면에 형성되는 강력한 리듬과 에너지, 그리고 나이프를 통해 형성되는 특유한 질감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열정과 혼에 더 매료되게 되는 것이다.

 

전미선 작가는 특히 나이프를 정교하게 다룰 줄 아는 화가이다. 전통적인 동양화가들의 붓을 통한 먹의 강약조절, 혹은 준법의 표현들은 이 작가의 나이프를 통해 색채의 강약조절, 윤곽과 거리 혹은 깊이의 정교한 조절 등을 통해 전통적인 매체들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된다. 특히 나이프라는 도구에 적합한 표현이 되기 위해 전통적인 잉어 그림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힘찬 형태로 해석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멀리서 보면 잉어 형상들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두터운 물감 덩어리들의 강약과 나이프 특유의 터치로 지극히 추상적인 리듬을 형성한다. 이는 음악에서 편곡과 유사하다. 편곡자들은 원래 음악에 사용된 악기가 아닌 새로운 악기를 도입할 때, 그 악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원래의 곡과는 또 다른 해석을 가하게 된다. 이는 단순히 원곡의 멜로디를 옮겨서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악기의 구조와 특징을 알아야만 하는 것이며, 그 악기의 구조에 맞게끔 새로운 편곡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전미선 작가는 전통적인 잉어 그림을 특유의 나이프 표현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이를 새롭게 재해석한다. 작가에 의해 재해석된 것들을 하나하나 음미해볼 때 우리는 이전의 잉어 그림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묘미를 느끼게 된다.

 

 

글 / 이영재 미술평론가


 

(풍요와 자유를 꿈꾼다, 잉어 작가 전미선)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잉어를 신성한 물고기로 여겨왔다.

양쯔강 상류에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는데 잉어들이 그곳을

거슬러 오르는 것에 성공하면 용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다.

풍요와 부의 상징이 되어온 잉어, 성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상징이 되어온 잉어

다분히 동양적인 대상을 서양 화폭에 과감하게 옮겨놓은 전미선 작가의 잉어 그림을 보면

그녀가 비단잉어만 그리는 작가는 아니지만 잉어 작가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이유는 이렇다.

그녀의 잉어들은 동양화 화폭에서 보는 잉어들처럼 구체적이거나 느릿느릿하지 않고 자유롭다.

흔히 물속에 있는 물고기들은 물을 떠날 수 없으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보다는 구속받는 존재로 많이 묘사되어왔지만, 전미선 작가는 잉어를 그리면서 모양이나 디테일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전체적인 구도와 동작을 표현함으로써 자유로운 속도감이 붙으며 물속에 갇힌 잉어가 아니라 자기들이 노니는 물과 경계가 모호해진다.

풍요와 자유는 때때로 상반된 의미로 인식된다.

풍요를 위하여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하여 집을 짓고 농사를 지어 수확을 했다.

유목민들은 풍요를 포기하는 대신 어디든 마음껏 돌아다니는 자유를 선택했다.

그러나 전미선 작가의 잉어들은 선명한 색채와 다이나믹한 움직임으로 풍요로움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물속이라는 한정된 곳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다.

세상과 나의 합일을 이루어가는 비법에는 그녀의 자유로운 터치가 있다.

그녀의 세계는 환하게 불이 켜진 세상이다.

물속의 음침함이 아니라 푸르고 청정한 세상이다.

힘들고 어렵고 꼬여있는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에 구속되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힘차게 꼬리 치며 세상을 유영할 힘을 준다.

그녀의 꽃 작품이나 풍경화 또한 동일한 선상에 있다.

부족하거나 아쉽지 않고 풍요롭다 넉넉하다.

이 여름 전미선 작가의 그림 앞에 서서 그렇게 풍요롭고 넉넉해지길 권한다.

 

권은경 (바로이게 갤러리 대표)


 

한 젊은 시인의 말이 생각났다.

감자를 깎다 보면 칼이 피해 가는 배꼽 같은 웅덩이가 파여져 있다는….

감자가 거친 돌을 만난 흔적이라고 했지.

그리고 그 움푹 파인 웅덩이가 씨눈이 되고 다시

싹이 나서 자라게 된다고 했다.

#8

벽 위에 흔적이 있었다. 움푹 파여진 구멍마다

오래전 그녀가 새겨 놓은 흔적이 있었다.

오호! 저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의 푸른 눈빛이었다.

먼저 칠해진 색은 나중의 색보다 아래에 있다.

덧칠이 되고 덮여도 세월이 가면 다시 움푹 파인

구멍은 그녀의 눈이 되는 것이다.

#9

조심성 많은 그녀는 최초의 색으로 바탕칠을 하고

소리 없이 그 속에 씨눈 하나를 만들어 놓고서

세상 밖을 지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벽의 거친 표면과 움푹 파인 구멍 간의 거리.

아, 얼마나 깊고 먼길 아니었더냐?

손마디가 꺾이고 어깨가 아팠다.

#10

언젠가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온다면

나는 조곤조곤히 그녀에게 말을 걸 테다.

맑고 푸른 물속의 잉어에서도 지중해의 동화를

그린 벽 속에서도 나는 언제나 당신을 지켜 보고 있었노라고.

그리고

그녀가 꿈꾸었던 여행은 동화(童話)가 아니었고

여행을 떠나기 오래전부터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갈구하던ㅡ 동화….

바로 그 동화(同化)가 아니었냐고

지중해 어느 마을에서 그녀와 同化하여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다.

 

글 장두곤


 

전미선 작가 노트

사는 환경과 공간 크기에 따라서 자라는 정도가 다른 비단잉어(코이)는, 작은 공간에서는 조그만 물고기가 되고, 커다란 공간에서는 1m가 넘는 대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도 마음속에 가지는 꿈과 마음의 성숙 범위에 따라, 자신의 성장할 가능성과 삶의 깊이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얼마만큼 크기와 어떤 모양의 꿈을 꾸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삶의 크기와 모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단잉어(코이)처럼 말입니다.

 

2013년부터 작업하고 있는 잉어 소재는, 역동적인 리듬과 에너지, 두터운 마티에르, 색채의 강약조절, 윤곽과 거리와 깊이 조절 등으로, 전통적인 내려오는 잉어 그림보다 더 단순하고 힘찬 형태로, 나이프로 캔버스 위에 표현하여 작업했습니다.

이런 코이 나이프 작업은 멀리서 보면 잉어들의 형상이지만 가까이 보면 두터운 물감 덩어리들의 강약과 나이프 특유의 터치로 지극히 추상적인 리듬을 형성합니다.

 

전 이젤 앞에 서면 가슴 두근거리며 행복합니다. 그 모든 행복과 감사를 그림에 담아냅니다. 작품 하나하나에는 행복과 즐거움과 신나는 에너지가 녹아 있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좋은 뜻을 가진 비단잉어를 캔버스 위에, 역동적 또는 고요한 리듬감으로 다양한 모양으로 표현하고, 따뜻한 긍정적인 화사한 색감을 표현함으로, 그림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따뜻한 좋은 에너지를 전달해 드리고 싶습니다.

 

오래전부터 작업하던 외국 풍경이나, 건물, 정물, 꽃 그림 등도 역시, 밝고 경쾌한 색채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그림으로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색감으로, 긍정과 감사와 따스한 정서로 채워 가면, 제 작품과 마주하는 사람들도 그런 긍정의 시각으로 행복한 마음이 될 듯합니다.

 

그림으로 많은 사람들과 행복 에너지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전 미 선 (JEON, MI SEON / 全美仙)

전미선 작가는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호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인사동 라메르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했으며, 25회의 개인전과 8회의 부스개인전, 45회 국내외 아트페어 등 1993년 이후 310여 회의 국내외 전시를 했다.

2011년 IBK 기업은행, 투자증권, 시스템, 캘린더 선정작가. 2013년 대한항공 광고 그림 선정작가. 2014년 대한항공 ‘어디에도 없던 곳 인도양으로’ ‘제21회 올해의 광고상’ 그림 작가. 2017년 쉐보레 SNS 광고 그림 작가였고, 2013년부터 계속 MBC 주말드라마. 일일드라마 등 여러 드라마에 작가의 그림이 나오고 있다.

작가는 초기 10년은 붓으로 사실주의 작업을 했으며 그 이후 20여 년은 페인팅 나이프로만 작업했다. 2004년부터 유럽여행을 다니며 두터운 마티에르의 유럽 건물을 많이 그렸고, 2013년 우연한 기회에 비단잉어(KOI)를 접하고 독특한 질감의 비단잉어 작품을 외국 아트페어에 선보인 후, 외국 컬렉터들의 좋은 반응으로 비단잉어 작업과 함께 유럽 건물, 꽃 작업등을 많이 하고 있다.

전미선 작가는 명도 높은 색채를 통해 대상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선보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단잉어(KOI)와 꽃들은 생명의 기쁨과 에너지를 표현하기 위한 작가의 대상으로 화면 전체에 그 힘을 표출한다.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따뜻한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작가의 소망처럼

작품 속 대상들은 언제나 밝고 경쾌한 색으로 기운을 발산하며, 화사하면서도 은은한

색감으로 채도를 낮추고 명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자연의 색을 표현한다.

초기 작품은 작가 내면 그대로를 표현했다면, 지금의 작업은 생각들을 비우고 비운 후 긍정과 감사로 충만할 때 작업을 한다고 한다. 작업을 통해 한 곳을 바라보며 걷는 구도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