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주 개인전

한영주
2022 06/22 – 06/27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서문

미술평론가 이주우

 

한영주의 도예작품과의 첫 대면은 십여 년 전 인사동의 한 전시실에서였다. 현대 페미니즘 여성작가인가? 궁금해하면서, 작품들의 모티프가 거의 아낙, 소녀, 꽃 등 여성성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기성작가와는 다른 묘한 낯섦(Uncanny), 아니 무언가 평범한 듯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느낌을 받으며 그 실체가 무엇일까 고뇌한 적이 있었다. 단순한 여성성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펼쳐지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아련하고도 애잔한 울림장이 있었다. 그 속에는 시각예술로는 표현키 어려운 잔향(殘香)이 있었다. 러시아의 바실리 칸딘스키는‘예술이 단순한 장식과 구별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감동에 바탕을 둔 내적 필연성이 있어야 하며, 예술가가 느낀 감동이 감각적으로 조형화되어 관객의 감동에 전달되는 쌍방의 상호작용이 없으면 예술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뒤 십여 년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순수한 예술혼을 잃지 않고 치열한 조형의식으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간 작가를 지켜보면서 상기한 낯섦의 비밀 열쇠를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우선 작가는 물질화되고 육화(肉化)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한국 전통 여성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작업하였다. 코일링 기법과 성형을 다하고 속을 파서 다시 접합시키는 속파기 작업을 통해 한층 한층 시각을 넘어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Die Unsichtbare Stimmung)까지 다가가며, 가마 속 고온에 자신을 맡기고 인내하고 기다리며 가마를 열 때면 기대와 탄식 속에 미소 짓곤 했다. 오래전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이 아낙과 어린이의 모습으로 열려 나왔다. 과거는 현재 속에 융해되어 묘한 낯섦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 전체에 뿌리내려있는 심층 의식은 현대사회 전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페미니즘과는 결을 달리하며, 건강한 시간 여행을 하며 긍정적인 자애로움을 체화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전시되는 이번 작품들은 이러한 작가의 조형의식이 고도로 응축되고 절제된 모습으로 구현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작가가 보다 진일보한 작품세계 구현을 하기 위한 징검다리기(期)의 작품군(群)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추억 속의 아름다움이나 그리움 등을 내면으로 표현 이동하여, 작가 특유의 애잔한 정감으로 생명력을 불러 넣어주고 있는 양태가 여러 면에서 거의 정점에 달한 듯해서이다. 애정을 가지고 올곧게 한 방향으로 다가가고 또 다가가면 저절로 알아지는 법일까? 이제 작가는 조형의식을 일상적인 시각을 넘어 촉각, 청각 등 공감각으로까지 깊이 있게 두레박질하는 ‘조촐하지만 설레는’ 내공을 보여주고 있다.


 

한영주

작가노트

 

가마의 온도가 1240도를 넘기고있고

기대와 걱정으로 내마음도 가마와같이 1240도를 넘기고있다.

가마를 열때면 늘 망설여진다.

어느날은 기대는 탄식으로 서운함을 안겨주고,

어느날은 걱정은 탄성으로 미소를 안겨준다.

오늘은 추억이 짙어 그리움이 되어버린 엄마의 잔잔한 미소를,

왕자파스 하나로 아름다운 꿈을 가질 수 있었던 어린시절의 나를 마중하고있다.

70년도 중반 여중시절 인사동 2층 허름한 화실에서 처음 본 아그립바 석고상,

사각사각 소리로 나에게 미래의 문을 열어줬던 목탄 한 자루…

지금도 나는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나에게 미래를 선물한 엄마의 입가에 미소를 새기고 눈가에 꿈을 새긴다.

엄마의 가슴에 한 가득 안긴 사과의 빛처럼 가마의 온도도,

나의 마음도 빨갛게 달아오르는 밤이다.

“It’s bliss”

2022년 6월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