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희영 개인전 혼생(混生)
허희영
2026 08/19 – 08/24
3 전시장 (3F)
《혼생(混生)》
나는 오랫동안 식물을 관찰해왔다.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아무도 돌보지 않아 방치된 화단이다. 그 속에서 심어진 것과 저절로 자라난 것이 뒤섞여 경계가 사라진 풍경 앞에서 순수한 생명력을 느꼈다. 손을 대지 않았을 때 오히려 가장 살아있어 보인다는 것. 이 관찰이 나의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혼생》이라는 제목은 이미 작업의 방법론과 세계관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혼(混)’은 뒤섞임을, ’생(生)’은 살아있음을 뜻한다. 나에게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다. 오히려 뒤섞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명력의 증거가 된다. 이를 위해 나는 여러 식물을 하나의 화면 위에 구성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개별 식물의 형태는 흐려지고, 화면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읽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작업에서 특히 주목하는 지점은 시간과 장소의 인위적 붕괴다. 내가 화면에 불러들이는 식물들은 본래 같은 계절,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꽃시장에서 마주친 다채로운 재배종과, 길가에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이름 없는 들풀. 서로 다른 기원과 서로 다른 시간을 가진 이 식물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놓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질감이나 부자연스러움을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 공존이 낯설게 느껴지기 보다는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듯한 편안한 생명감으로 다가가기를 바란다. 이 지점에서 나의 작업은 식물의 병치(倂置)와 중첩(重疊)을 통해 보는 이의 감각 자체를 재조율 하려는 시도가 된다.
내가 식물이라는 소재에 애착을 갖는 이유 또한 이 세계관과 정확히 맞물려 있다. 나는 식물에게서 연약함과 강인함이라는 상반된 속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을 본다.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견디며 매번 다시 피어나는 힘과, 동시에 손끝 하나에도 꺾여버릴 듯한 여림. 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강조하는 대신, 그 양가성 자체를 온전히 화면에 담고자 한다. 이는 작업의 형식적 특징인 병치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어느 한 식물, 한 속성, 한 서사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화면 구성은 강함과 연약함이라는 모순된 두 축을 동시에 끌어안으려는 태도다.
결국 이 모든 조형적 선택은 나 자신의 존재론적 질문으로 수렴한다. 나는 이 작업이 사회 속에서 내가 어떻게 존재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뚜렷한 주인공도, 명확한 경계도 없이 여러 다른 것들과 뒤섞인 채로 존재하는 화면은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되기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개인의 은유다. 방치된 화단에서 발견한 순수함은, 결국 뒤섞임 속에서만 완성되는 삶의 형식에 대한 발견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