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표 개인전 색으로 떠나는 여행

홍경표
2019 03/20 – 03/25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나는 대상을 통하여 대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이면의 대상에 오히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실체가 있다는 생각에 그 이면의 표현에 집중한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은 대상으로도 존재하고, 대상의 이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존재한다.

 

세상의 일은 우리의 언어로 선명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그렇지 않은 부분보다 많다. 설명할 수 있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 논리적 명료화는 이루어질 수 없는 논제다. 눈으로 보는 것은 대체적으로 필요와 편견에 의해서 조종된다. 눈은 선택하고 거부하고 구성하고 차별하며 연관을 짓고, 분류하고 분석하고 조립한다. 그대로 비춘다기보다는 취사선택해서 만들어낸다. 따라서 순진한 눈으로 단순히 감지한다는 견해와는 대조적으로 눈은 선택적이다. 선택적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창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붉은색과 푸른색의 중간색인 보라색에서 어떤 이는 푸른색을, 어떤 이는 붉은색을 더 많이 본다. 이는 사람들이 똑같은 색을 본다고 하여도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색을 더 많이 취한다는 것이고, 이는 우리의 눈은 단순히 감지한다는 것과는 다르게 선택적이고 창조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유는 자신의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도약해야 한다. 이성은 자신의 능력들에 대해 추론하면서도 결코 그것들을 확장하는 데 이르지는 못한다. 회화는 말없는 사유이고 철학은 말하는 사유다. 침묵으로 말하는 회화는 눈과 정신에 집중하여 사유를 시각언어로 풀어낸다. 이와 달리 철학은 말의 수사를 통해 표현된다는 점에서 회화와 다르다. 그러나 회화와 철학은 모두 묻혀 있는 존재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가시적 형태를 통해 비가시적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내게 직면한 일은 첫 번째로 내가 과학에서 배운 모든 것을 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 과학을 통해 풍경의 구조를 표면으로 부상하는 유기체로 다시 포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과학적 지식으로 길들여진 눈을 씻어내고 새롭게 풍경을 본다는 것이다.

 

나에게 그림이란 풍경 속에서 발견하는 생명의 기운을 색을 통해 시각화하는 일이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동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생명의 기운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재 및 대상을 찾는 것은 아마도 고향 앞바다의 힘찬 파도에 너무나 익숙한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나는 그 파도로부터 강렬하고 힘찬 생의 기운, 생명을 느낀다.

 

예술은 공통성이 있고 그들에게 공통의 문제가 있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회화도 즉 예술에서도 형을 발명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힘을 포착하는 것이 문제다. 바로 그 때문에 그 어느 예술도 구상적이지 않다. “보이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도록 한다.”는 클레의 유명한 공식이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회화의 임무는 보이지 않는 힘을 보이도록 하는 시도로 정의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음악도 보이지 않는 힘을 들리도록 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명확하다.

 

메를로퐁티의 연구에서 미술과 연관된 주요 개념으로는 먼저 가시계와 비가시계의 관계를 들 수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964)에서 그가 제시하듯 비가시계는 단순히 가시계의 반대가 아니다. 비가시계는 가시성을 가능하게 만드는 잠재적인 근본 토대와 같은 것이다. 마치 바다 위에 보이는 빙산의 꼭대기는 그 저변에 깔린 엄청난 몸체의 빙산 덩어리인 것처럼 비가시계는 그 암시적이고 감춰진 깔린 방식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각에나 존재한다. 따라서 비가시계는 보여 지는 것보다 더 큰 범주로서 개별성을 관통하고 넘어서는 수평구조인 셈이다. 이는 메를로퐁티가 설명했듯이 비가시계란 것이 “감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물의 반대가 아니고, 그것의 안감을 대는 것 혹은 그것의 깊이”라고 봐야 한다.

야경과 파도 등의 사실적인 형태감을 형성하는 나의 화면은 실상 가까이서 보면 반복과 두터운 마티에르, 힘찬 필치, 원색에 의하여 구축된, 형태를 가늠하기 힘든 추상적인 색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터운 마티에르와 힘찬 필치’라는 행위이다. 나는 두터운 마티에르와 힘찬 필치의 행위에 지루함 자체를 잊어버릴 정도의 거의 무의식적인 ‘집중력을 요하면서 이 집중의 순간순간에 어떠한 무의식적인 전이의 힘’을 조형에 담아내고 있다. 이것이 형태와 두터운 마티에르와 힘찬 필치와 색감에 의한 조형적으로 순수한 상징성과 심리적인 효과를 발산하는 주요인이다. 나의 풍경이 풍경 이상의 효과를 획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소재 및 대상이 무엇이든지 정체되어 있는, 즉 생동감이 결여된 것에는 시선을 주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거칠고 스피디한 터치와 명징한 색의 병치를 선호한다. 나의 회화적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칠고 속도감 있는 터치와 두터운 마티에르, 터치마다 갈라지는 원색의 색채는 일상적인 사물 속에 내재하고 있는 빛과 운동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회화적 효과이자 나의 심리적 상태를 전이시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실재하지 않으나 그렇다고 실재하지 않다고 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대상을 안다는 것은 우리들의 세계를 넓히는 일이고,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시적인 형상을 통해 비가시적인 대상을 보며, 우리는 대상의 또 다른 실체를 보게 되는 것인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대상의 실제 real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작가는 가시적인 것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보고, 그 대상을 관통해서 세상 너머를 보는 사람이다.

 

홍경표(洪景杓 Hong kyeng-pyo) 약력

.1960년생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 졸업

.개인전 42회,

.초대전 및 단체전 480회

.올해의 작가상, 경북미술대전초대작가상 수상.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경북미술대전 최우수상, 신라미술대전 최우수상.

.작품소장처: 호주시드니총영사관, 포항시립미술관, 경북도청, 삼성전자,

고려제약, 한전프라자, 상호신용금고, 울진군청, 울진경찰서, 울진자활센타.

.현재:한국미협,신작전,신미술회,구작회,울진미협

대한민국미술대전초대작가, 경북미술대전초대작가, 신라미술대전초대작가.

.심사:나혜석미술대전,울산미술대전,대전시미술대전,신라미술대전.경북미술대전

 

.주소-경북 울진군 죽변면 죽변 등대길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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