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현 개인전 권여현, 회화 수행성 Performativity of Painting
권여현
2025 11/26 – 12/08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회화의 본질은 숲 속의 숨바꼭질 같다.” 권여현의 선언은 그의 화면이 끝없이 숨어들고 드러나는 사유의 장(場)임을 밝힌다. 작가의 캔버스에는 잠재화된 감각을 소환하기 위해 신화와 철학적 담론이 진동한다. 이때 철학은 추종해야 할 모티프가 아니라 이미 내재화한 내적 필연성으로 규범적·인식론적 기저이며 ‘철학을 따르는 미술’이 아니라 ‘철학을 지참한 미술(Art with Philosophy)’을 통해 영혼의 화음을 모색해왔다.
권여현에게 숲은 원초적 상상력을 품은 사유의 장(場)이다. 최근 <일탈자> 연작에서는 직립한 수목보다 뿌리·줄기·넝쿨이 전면화되며, 위계 없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리좀적 연결이 시각화된다. 프로메테우스·오이디푸스·안티고네·오필리아 같은 신화의 인물들은 오늘의 동시대 이미지와 한 화면에 병치되고, 서로 다른 기원과 기호가 중심 없이 접속하고 혼종으로 증식된다. 그 순간 규범과 금기의 외부로 열리는 헤테로토피아가 된다.
이러한 숲의 구성 방식은 작가의 서사 전략과 맞물려 더욱 분명해진다. 권여현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통찰을 작동 원리로 삼아, 서사의 핵을 드러내기보다 단서의 배열(맥거핀)과 시선의 교란을 통해 욕망의 경로가 타자적 응시를 거쳐 이동·치환되는 과정을 회화적으로 추적한다. 이러한 전략은 이전 작업인 <눈먼 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가 던진 문제의식—스펙터클의 응시가 감각·의지·생명을 석화시킨다는 경계—와 궤를 같이하며 이번 전시에서도 중심을 이룬다. 그는 메두사 모티프를 비틀어 ‘내면의 눈’으로 보기를 제안하고, 혼종적 신화 존재와 동시대 인물이 뒤섞인 장면을 통해 표면의 볼거리를 비켜가도록 시선을 이탈시킨다.
형식적 전환도 뚜렷하다. 최근 작업에서 색은 한층 맑아졌고, 붓질은 더 간결해졌다. 작가는
묽은 채색의 층위를 살리기 위해 캔버스를 수평으로 눕혀 작업하며, “빠른 스트로크—얇은 막—맑은 색채”를 핵심 화두로 삼는다. 단 한 번의 스트로크 안에서 색의 스펙트럼이 갈라지고, 형상의 경계는 흐릿함과 선명함을 오간다. 그가 ‘감각의 드로잉’이라 부르는 방식은 단단히 굳은 형태를 지양하고 유동·변용 가능한 액체성을 추구하며, 화면 전역에 촉각적 리듬과 청명한 발광을 부여한다.
결국 <수행성> 연작은 완성의 순간이 아니라, 다음 사유를 이끄는 시작점으로 서 있다. 신화·철학·대중문화가 교차하는 숲에서 주체는 타자의 시선과 언어를 매개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그 변주는 리좀처럼 사방으로 번져 새로운 의미망을 만든다. 이 지점에서 권여현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테크니션으로서, 개념과 이미지를 정교하게 결속하는 철학적 감식안과 재료·스트로크를 치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적 역량을 두 축으로 균형 있게 구사하며 오늘의 회화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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