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배 개인전 달 항아리

김흥배
2020 02/26 – 03/09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달 항아리

달, 특히 보름달은 누구나 잘 알듯이 상서로운 기운을 가득 품고 있다 하여 풍요와 생산을 의미하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달을 보며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달을 표현한 훌륭한 예술 작품이 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조선의 백자 달항아리 앞에선 대부분 탄성을 터뜨리곤 합니다. 이 백자 항아리들은 20세기가 될 때까지 평범한 실용품 이상의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면서 조선의 달항아리는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수많은 학자, 골동품 애호가, 예술가 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새롭게 해석해서 담아내려는 근현대 도예가와 조각가, 사진가, 화가 등의 창작물 역시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달항아리의 형태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몸통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각각 따로 만들어 붙인 후, 전체 모양을 다시 다듬습니다. 달항아리라는 이름처럼 온전하게 둥근 형태의 항아리가 많지 않은 상황은 이런 제작 과정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렇게 형태를 완성한 항아리도 1,300도의 가마에 들어가 굽는 과정을 거치면서, 크기로 인한 무게 및 장력과 고열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거나 터지고 변형되기 일쑤입니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달항아리는 그리 커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손으로 흙을 반죽하고 발로 물레를 돌려 모양을 만들고, 장작으로 가마에 불을 지폈던 조선 시대에, 달항아리의 크기는 수많은 우연과 변수가 작용하며 완성한 최대치였을 수 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과 도예가라는 사명감으로 이러한 좋은 의미와 조형 및 예술성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달항아리를 현대 감각의 맞게 재해석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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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꾼

춤을 춘다, 쥐면 부서질 듯 잡으면 부러질 듯 양손에 힘을 빼고 물레위에서 빙글 빙글 춤을 춘다.

물레 위 흙 한줌 올려놓고 춤을 추는 날이면 날 이새고 별이 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물레 위 한줌의 흙을 올리고 춤을 춘다.

어쩌면 나는 전생에 춤꾼 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그렁 한쪽 어깨를 올리고 내리는 달 항아리

격한 춤사위로 흐트러지지도 않고 딱딱하게 굳어 정지된 춤사위도 아닌

가을밤 미풍에 살랑 거리는 백색의 엷은 모시옷 같은 춤사위.

달 항아리가 대청마루 반다지 위에서 그윽한 춤사위로

실그렁한 어깨춤 추며 백옥 같은 얼굴로 그렇게 올려져 있다

 

분을 바른 듯 매끈하지도 않은 것이

요란스레 오방색 꼬갈 옷으로 치장도 않은 것이, 눈이 가고

손이 간다.

시냇물에 얼굴을 씻은 듯, 참빗으로 머리를 빗은 듯, 단아하고

청초한 얼굴을 한 배자 항아리.

시냇물의 깨끗한 물소리가 참빗 빗어 내린 매끈한 머릿결이 흰색의 단정함에

눈길가고 손길이 간다.

 

하나와 또 다른 하나가 포개져 또 다른 하나를 만드는 것.

다름과 다름이 포개져 하나가 되는 것. 모나지 않은 그것이 달 항아리 이다.

세상의 다름을 포개고 합쳐져 둥그런 것,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그것 편안한 아름다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백색의 아름다움,

 

달 던지기

초저녁 하늘에 뜬 달을 양손을 살포시 모아 건져내어 땅위에 내려놓으니

백색의 항아리가 되었다.

백색의 항아리들 두 손을 뻗어 하늘에 걸으니 초저녁 희끗한 달님이 되었다

달님이 하늘에 뜨고 땅위로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