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숙 개인전 PERFECT DAYS
박진숙
2025 06/18 – 06/23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박진숙 개인전 《Perfect Days》서문
홍예지 미술비평가
아무리 좋은 날도 누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음미하지 않은 행복은 덧없이 사라진다. 결핍에 집착하는 사람은 눈 뜬 장님이다. 산해진미(山海珍味)를 차려 놓아도 소용없다. 마음이 온통 여기 없는 것에 꽂혀 있기 때문이다. 많은 날이 그렇게 버려진다. 맛보지 못한 좋은 날들이 구멍 속으로 다 빠져 나간다.
반면 차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촘촘한 거름망이다.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걸러 내는. 따뜻한 물을 부으면 잘 말린 차꽃의 향기가 풀려 나온다. 인생의 참 맛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햇볕과 바람을 만나 변성된 삶이 특유의 풍미를 드러낸다. 그러고 보면 차를 마시는 행위는 조용히 간직했다가 꺼내는 행위다. 기다림 끝에 적셔 오는 성숙을 온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향유하는 인간에게는 하루하루가 완벽한 날이다. 그의 감각은 미립자 단위의 행복을 포착한다. 일곱 계절이 바뀌는 미미한 신호도 금방 알아차린다. 사이에 깃든 미세한 차이, 그곳이 향유자가 최고의 애정을 쏟는 영역이다.
음미하는 인간의 시야는 무한에 열려 있다. 차 한 모금 머금고 내면의 눈을 뜨면, 안으로 펼쳐지는 드넓은 마음과 밖으로 전개되는 광활한 우주가 하나임을 알게 된다. 안팎으로 푸르른, 이 청량한 기쁨! 자유자재(自由自在)한 인간에게 기원전 반구대의 기억과 2030 서울의 미래는 그 어떤 괴리감도 없이 나란히 세워지는 청사진이다. 그 그림 속에서 자연과 인간은 지고(至高)의 이상향을 가리키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 어디든 자연이 품지 않은 쉼터가 없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정원이 없다. 자연과 인간이 맺은 이 오랜 친연 관계야말로 향유하는 인간 박진숙이 질릴 틈 없이 몰입하는 테마다.
박진숙의 그림은 예술철학의 측면에서 동양 산수화의 자연 친화적 세계관과 다도(茶道) 문화를 충실히 계승하는 한편, 형식적 측면에서도 역원근법(逆遠近法)과 이동 시점(視點)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로써 관람객은 평면 안에서 무한히 전개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박진숙은 화면 밖의 고정된 시점에서 자연을 대상화한 것이 아니라,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자의 시선으로 무성한 나무와 꽃 핀 바위 틈 사이사이를 실감나게 그려 내고 있다. 이러한 다층적인 표현은 머릿속 상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작가가 수십 년간 조경 설계를 해 오면서 방방곡곡을 유랑한 경험을 자신만의 화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지나치게 예스러운 표현은 자제하고, 현대적인 선과 색을 통해 일상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화면을 제시하고 있다. 이 친근한 그림을 통해 자칫 놓쳐 버릴 수 있었던 매일의 행복을 붙잡아 누릴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