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나 개인전 지각의 틈
유영나
2026 10/07 – 10/12
2 전시장 (2F)
지각의 유격 – 유영나 회화에서의 놀이와 ‘율’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유영나의 작업에서는, 〈공간놀이〉와 〈공간-율〉 사이에도 한 시기가 끝나고 다른 시기가 시작되는 식의 선명한 단절은 없다. 두 제목은 한동안 포개져 나타난다. 그래서 이 변화를 발전이나 진화의 서사보다 놀이가 머무는 장소가 달라진 과정으로 읽는 편이 자연스럽다. 초기에는 사각형과 띠, 직선적인 경계와 분할된 면이 서로 자리를 밀고 당기며 조형적 유희를 화면 앞으로 끌어냈다. 이후 〈공간-율〉에서는 그 움직임이 중첩과 삭제, 스밈과 벗겨냄, 출현과 잠복이라는 더 깊은 시간 속으로 옮겨간다. 놀이의 감각이 차츰 ‘율(律)’이라는 회화의 호흡을 얻은 것이다.
그 변화의 한복판에 종이나 종이테이프가 있다. 그림을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개입했던 것이 완성된 화면에서는 사라진다는 사실은 묘하다. 종이는 떠났지만, 그것이 막았던 자리, 색이 비집고 흘러간 가장자리, 눌리고 걷힌 자국은 남는다. 사라진 막이 보이는 이미지를 남긴다. 지금 눈앞의 색채에는 현재의 붓질뿐 아니라 이미 지나간 행위의 시간까지 배어 있다.
유영나 회화의 독자성도 이 지점에서 선명해진다. 흐릿하고 모호한 이미지를 만드는 추상화는 많다. 유영나는 그 모호함을 스타일로 설계하기보다 실제 창작 과정에서 발생하도록 틈을 열어둔다. 손과 캔버스 사이에 종이라는 막을 끼우고, 색이 스며드는 시간을 허용하며, 다시 그 막을 제거함으로써 의도와 결과 사이에 작은 어긋남을 만든다. 그 오차가 다음 행위를 부른다. 너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면 그림은 오히려 일찍 끝났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여분을 ‘유격(遊隙)’이라고 부르고 싶다. 유격은 맞물린 것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된 미세한 간격이다. 유영나의 작업에는 의도와 우연, 손의 개입과 물질의 반응이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작은 틈이 남는다. 흥미롭게도 영어의 플레이(play)에도 놀이와 더불어 기계적 장치의 느슨함, 움직임의 여지를 뜻하는 용례가 있다. 말의 우연한 겹침이지만 〈공간놀이〉와 이번 개인전 《지각의 틈》에서 선보이는 〈공간-율〉 사이를 잇는 꽤 흥미로운 다리가 된다. 작가의 놀이에는 처음부터 무언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던 셈이다.
(개인전 서문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