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식 개인전

Jung Gyungsik
2023 07/26 – 07/31
3 전시장 (3F)

작품의 운명이 있다면 – 침묵의 뿌리

정경식

 

그동안 작품을 하며 붙들고 있었던 것은‘명상을 통한 자아 탐구’였다. Maditation 시리즈는 이러한 풍경을 들여다 본 것이다. 하나의 세포가 모여 생명을 이루듯 명상 시리즈는 넝쿨 같은 사유의 이미지를 생각했다. 의식의 거미줄, 정적이 겹겹이 쌓인 시간의 긴 줄, 빛이 닿지 않는 오랫동안의 그늘, 빛보다 긴 생명을 잉태하는 어둠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작업했다.

작은 사물들은 감성의 기호화된 풍경이다. 그림 속 사물은 무심히 놓여져 있고 탁자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작은 병처럼 명상하듯 거기 서있다. 빈병은 의미 없이 거기에 있기도 하고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사물에게 다가가 바람처럼 말을 걸 뿐이다. 수직으로 또는 수평으로 흐르는 긴 공기 사이로 혹은 공중을 나는 바람 속이나 호수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이미지처럼 고요하다. 돌의 기운은 작지만 넓은 공간을 호흡하며 퍼져나간다. 돌 속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듯 그림자처럼 보이는 형상을 바라보면 상념이 중심을 잃고 흩어진다.

작품은 스스로 저 끝을 보며 걸어간다. 시간이 만들어낸 색과 질감들이 조화를 이루며 숙성되어 가다보면 색이 물들고 시간이 흐르면 오랜 시간 숙성되어진 것처럼 바람과 비와 은하수가 되어 버린다. 조금씩 밤이 오고 새벽이 오듯 작품은 시간의 힘을 빌려 만들어진다. 두개의 세계를 사는 것처럼 창조하는 시간은 경계를 넘나든다. 그 속에서 하나의 풍경을 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켜켜이 쌓인 시간, 무심히 지나는 바람과 투명한 하늘이 그 풍경 속에 담겨져 있다. 시간이 사라진 공간은 또 다른 생성을 암시한다. 은하수 같은 의미의 메아리 속에 그어진 검은선은 허공에 뿌리를 내리고 대기 속에서 호흡하는 것처럼 고요하다. 물속을 들여다보는 느낌, 해질녁 주황색의 하늘로 어둠이 몰려들 때의 대기, 무의식의 한 귀퉁이 느낌이 화면에 자국으로 남는다. 혼자서 한숨을 쉬고 있는 작은 형태는 누군가의 옆얼굴을 닮기도 했다. 돌아앉은 먼 산처럼 침묵하는 사물들은 헤아릴 수 없는 그만의 세계에 잠겨있다. 윤곽은 하나의 표정으로 호흡이 바뀌고 꽃이 피어나듯 형태에 리듬을 주려했다. 비어있거나 오브제에 연결된 몇 개의 선은 본질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아득한 공간에 놓인 원근 없는 직각의 이미지는 그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모습에 가까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과정은 결국 존재에 대한 불완전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언어의 틀에 갇히지 않는 오브제들은 생명을 갖는다. 화면의 풍경을 따라 물감이 칠해지고 작품 속 사각형 혹은 원형의 단순한 형태들은 만질수도 없는 시간의 궤적을 담고 있다. 숨쉬는 순간마다 고요를 담다보면 공간속의 이미지들은 또 다른 시공간을 만들고 서사적 깊이를 만들어 간다.

그동안 작품의 언어를 고르는 데 힘겨워했던 때가 대부분이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동안 머리 속 파일을 열 때마다 단상들이 오가지만 손을 통해 확인되는 것은 의도와 다를 때가 많았다. 이 길 위에서 반복되는 시도와 반복되는 실패는 차라리 아름답다. 메마른 땅을 밟고 작품 속으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가다 보면 마침내 하나의 풍경을 만날 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