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토회 반반의 조각
김동회, 김은진, 김진형, 김현정, 서선명, 심윤회, 이윤선, 임윤경, 전은아, 전은회, 표주영, 황보경
2026 11/11 – 11/16
본 전시장 (1F) 특별 전시장 (B1)
<전시글>
반반의 조각 이 전시는 우리가 지나온 30년의 세월을 기념하는 자리이자, 남은 30년도 지금과 같이 묵묵히 창작에 전념하겠다는 다짐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시간의 반환점에서 만나는 12명의 작가가 각자의 방식으로 꺼내놓은 작품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감각과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예술세포와 관객의 감각세포가 만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작가노트>
김동희
다른 신호 —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신호가 누군가에게는 다르게 읽히는 것. 다른 시선 — 익숙한 신호등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다른 존재 — 정해진 규칙이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를 드러내는 것. 다른 선택 — 빨간불에는 멈추고 초록불에는 간다는 당연한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 ‘다른’은 단순히 차이를 구분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고, 당연하다고 믿었던 질서에 질문을 던지며, 다름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생각하기 위한 표현이다.
김은진
숲의 나무들은 저마다 홀로 서 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서로 기대고 겹쳐지며 하나의 산을 이룬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사람들이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을 보았다. 동양화의 여러 재료를 한지 위에 올리고 덜어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드러나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하는 관계의 층이 조금씩 쌓여 간다. 그렇게 그려진 풍경은 눈앞의 자연이면서, 동시에 우리 마음 안에 자리한 관계의 풍경, 그리고 심리적 풍경으로 남는다.
김진형
Serendipity-개인의 시간과 공간 속 무심히 지나쳤던 점과 같은 순간들에서 뜻밖에 마주하는 장면과 사물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존재와 인식의 관계를 탐색하게 한다. 우연이 선사하는 이 시각적 사건은 수동적인 일상을 주체적인 감상과 자각의 순간으로 전환시키는 사유의 공간으로 확장되어, 잊고 있던 존재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김현정
가끔 주위 사람들이 그림을 왜 그리느냐고 묻곤 한다. 난 알고 있다. 내게 진정한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 무엇인지. 삶도 그러하듯 그림도 애정과 열정,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초라해지기까지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좋은 화면이 나올 때, 황금사과를 얻은 듯한 기쁨을 얻는다. 그 모든 과정이 나의 치유의 시간이다. 그림은 내게 정원을 가꾸는 일과 닮아 있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정성껏 돌보아도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이 있다. 그러나 기다림 끝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날 때, 우리는 그 시간 전체가 선물이었음을 깨닫는다. 나의 화면은 그렇게 가꾸어 가는 작은 정원이다. 그곳에서 나는 쉬고, 숨 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우리는 누구나 위로와 안식이 필요하다. 나의 작업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타인에게도 언제든 찾아와 쉴 수 있는 정원이 되고, 소중한 삶의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꿈꾸며 물감을 개고 붓을 든다. 나는 그 꿈 가까이 가고싶다. 응봉동 작업실에서 가을날
서선범
얼굴로 보는 관계 탐구 : 인간의 관계성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인물들의 내면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형상을 구현해 내는데 중점을 둔다. 이런 궁금증은 직간접적으로 만나거나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인물들의 얼굴을 관찰하고 인지하는 동안 재구성된다. 이렇게 수집된 얼굴의 감정에 집중하며,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풀어내고자 한다.
심윤희
나에게 작업은 하나의 수련이자 움직이는 명상이다. 물결이라는 패턴을 반복해서 그리며 몰입의 세계로 들어간다. 뭉쳐진 색이 한지 위에 잘 스며들도록 붓으로 쓸어내고, 불필요하게 남아도는 색은 닦아낸다. 이 과정은 화면을 채우는 행위인 동시에, 내 안의 과잉을 비워내고 온전한 나 자신을 인지하는 수행의 과정이다.
이윤선
일상은 무심하게 흐르는 듯하지만, 때로는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오는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바쁜 도심의 걸음을 멈추게 한 압구정 창문 너머 소박하게 일렁이던 연두빛 담쟁이 잎사귀 하나. 그것은 스냅사진의 셔터 소리처럼, 동시에 가슴속 깊은 곳으로 아련하게 흘러 들어와 켜켜이 감정의 층을 쌓아 올린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던 유유자적한 생명의 운치…그날의 풍경은 단순한 시각적 여운을 넘어, 마음에 울려 퍼지는 한 편의 시가 된다.
임윤경
사물의 실체를 비우고, 그 안에 감정의 흐름을 채웁니다. 익숙한 대상의 구체적인 형태 너머에는 시간의 흔적과 개인의 기억,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형태를 덜어내고 음영과 조형, 섬세한 흔적들을 통해 사물에 담긴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드러내고자 합니다.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순간, 사물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저마다의 감정과 의미를 품은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작은 것들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의 결을 발견하고, 보이지 않는 것의 본질을 더듬어 가는 일. 그렇게 비워진 자리마다 저마다의 감정이 스며들고, 그림을 마주하는 이의 기억과 감성이 더해져 또 다른 이야기가 피어나기를 바랍니다.
전은아
나는 일상의 사물들이 꽃처럼 보이는 순간을 그린다. 사물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샤워기의 물줄기는 더 이상 물의 흐름이 아니라 흩어지는 꽃다발처럼 인식되고, 부엌에 놓인 국자와 알뜰 주걱 역시 기능적 도구가 아닌 꽃의 형태로 전환된다. 익숙한 이름과 기능이 사라지는 순간, 사물은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퍼지고 모이고 흩어지는 지로 다가온다. 내게 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꽃은 중심에서 바깥으로 펼쳐지고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흩어진다. 내가 마주하는 일상의 사물들 또한 어느 순간 기능보다 그러한 움직임과 구조로 먼저 인식된다. 그래서 나는 사물을 꽃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물 안에 이미 존재하던 퍼짐과 확장, 흩어짐의 순간을 꽃이라는 이미지로 읽어낸다. 여기서 꽃은 실제 대상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게 되는 하나의 상태에 가깝다. 사물이 기존의 의미 체계에서 벗어날 때 나타나는 인식의 결과이며, 나는 그 짧은 전환의 순간을 화면에 담아낸다. 나의 작업은 특별한 장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사물이 다르게 보이는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물은 언제든 다른 모습으로 인식될 수 있으며, 나는 그 가능성을 따라간다. 꽃은 내가 그리는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전은희
누구에게나 장소는 시간을 품은 자리지만, 장소가 비장소로 변하게 되면 소리 없는 풍경이 된다. 그리고 그 자리의 시간과 기억, 역사는 소멸된다. 점차 빈번해지고 있는 비장소화는 학술적으로 구분되는 비장소의 개념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의 장소 상실로, 섬처럼 떠도는 사람들의 갈 곳 없음이 더해져 확장된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남은 자연물은 조용히 시간을 소비한다. 그리고 날 수 있는 새는 다음 풍경을 기다린다.
표주영
나는 지나간 시간이 현재의 감각 속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바라본다. 어떤 기억은 선명한 장면으로 떠오르지만, 어떤 기억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으로 남는다. 이미 지나간 일도 지금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읽히며, 잊었다고 생각한 경험은 뜻밖의 순간에 낯선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작업 속 풍경은 이러한 기억과 감정이 만나는 자리다. 살아오며 느꼈지만 충분히 말하지 못했던 서로 다른 순간들은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지고, 그 사이의 빈 곳은 미처 이해하지 못한 경험을 다시 바라볼 여지를 남긴다. 나에게 작업은 과거를 하나의 의미로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달라지는 기억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지금의 나를 이해해가는 과정이다.
황보경
삶의 장소 이동이라는 변화에서 만들어지는 감성의 한 조각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회색의 삭막한 도시와 대립되는 싱그러운 유년시절의 그리운 나의 집, 나의 공간, 아버지의 정원에서 흔히 보이는 초록색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작업으로 그려지고 그 관심은 작가가 만들어낸 나무의 이미지를 땅에 심거나 하는 행위를 통해 숲을 만들어 지금 현재 처한 상황에서 은신할 수 있는 케렌시아 또는 무릉도원 같은 유토피아적 세계를 이야기합니다.
